dev1ce, 활동 중지 원인은 과로 및 공황장애
사진파일 Astralis 홈페이지
기사 원문 hltv.org/news/35721/device-on-reasons-behind-leave-my-body-just-shut-down
CS:GO에서 현재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를 고르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떠올릴 s1mple이라는 사람이 꼽힐 겁니다. 카스를 잘 모르는 사람도 알만 한 CS:GO의 아이콘이 된 플레이어이고 현재 이견의 여지가 없이 (시리즈 전작 게임들을 제외하면) CS:GO에서 현재 유일한 GOAT인데, 그런 s1mple과 얼마 전까지 최정상을 두고 다퉜던 단 하나의 슈퍼스타가 또 한 명이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dev1ce라는 플레이어입니다.
dev1ce는 현재 s1mple이 소속된 Na`Vi에게 왕좌를 빼앗기기 전 사실상 CS:GO 이스포츠씬을 그 어느 세계적인 강팀들도 경쟁 조차 성립시키지 않고 약 3년 가까이 군림하던 Astralis에서 활동했습니다. 둘이서 게임 상 거의 똑같은 역할(둘 다 소총수로 데뷔→현재 저격수)을 맡으면서 팀 내 최고의 에이스였고 자신의 팀을 한 때 전세계 최강의 팀으로 이끈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dev1ce와 s1mple 둘 중 누가 더 최고인지 결론이 나지 않았던 세계 최고 중에서도 최고의 라이벌이었지만 dev1ce가 어느날 건강 상의 이유라고 발표하고 그 어떤 예고도 없이 갑자기 휴식기를 가진다고 하고는 두 차례나 잠적해버리는 전례를 찾기 힘든 초유의 사태를 일으키며 프로씬에서 오랫동안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사이 잠깐 다시 활동하면서 갑자기 NiP라는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가 되돌아오는 기행을 보이며 더는 s1mple과의 경쟁자로 재기할 성적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그럴 수도 있다고 치기엔 그 잠적 기간이 한 번은 1분기(3개월) 이상, 다른 한 번은 무려 1년 동안이나 공백이었어요.
정식으로 복귀한 뒤로도 모두가 이해하지 못했던 자충수를 두고 팬층의 수많은 추측과 오해에 대해서 함구하던 dev1ce가 오늘 카스 최고의 뉴스 및 포럼 사이트인 hltv.org에서 드디어 인터뷰로 관련 언급을 했습니다. 아래가 그 발언인데 전문을 모아놓으니 너무 길어서 좀 요약하겠습니다.
"NiP로 이적했던 건 여전히 탁월한 판단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이적 직후에도 만족스런 성적을 냈지만 메이저 대회(PGL 스톡홀름 2021)가 다가오는 중요한 시기라 차마 내 주장을 피력하지 못했다. 나만 외따로 갇혀있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으며 공황 장애와 그로 인한 불면증도 앓았다. 완전히 지친 상태에서도 매일매일 체력을 전부 갈아넣는 일상을 자주 반복했다. 근데 달리 방법이 전혀 없었단 게 진짜 더 큰 문제였다. 잠깐이라도 CS:GO에 관련된 모든 걸 제쳐놓지 않고선 불가능하단 결론 밖에 나오지 않았다"
Astralis의 선수 중에서도 특히 dev1ce는 오랜 기간 쉬지않고 달렸었고 재능이 뛰어나서 열심히 할 수록 더 높은 성적이 바로바로 튀어나오던 선수였습니다. 거기다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알려져있는데 본인 발언으로 짐작하자면 그러다보니 바로 코 앞의 고지를 포기하지 못하고 스스로 너무 오랫동안, 또 너무 심하게 혹사를 자처했고 그걸 느끼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번아웃이랑은 또 다른 경우 같은데 워커홀릭이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군요. 근데 또 대단한 게 쉬다가 돌아온 그 길지 않은 기간 몸을 담았던 두 팀 모두 본인의 힘으로 최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았고 다시 잠적하자마자 추락했다는 거지요. 완벽주의가 성격을 넘어 결벽증 수준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선수 생활도 못해본 입장에서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같은 무책임한 근성론을 들이밀고 싶지 않습니다. 본인이 정말 프로 지향을 하고 있는 선수라면 겪을 수도 있는 상황이겠지만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팀원이 '곧 대회인데 나중에 쉬겠다'면서 자기 등에 채찍질 하는 기특한 모습까지 부정하려는 염세적인 말씀을 드리려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본인이 팀 매니저나 코치라면 열심히 하는 분위기에 취해서 이런 상황이 만성화되고 있는 걸 놓치거나 내심 못본체 하지는 않은지 정도는 간간히 체크해주시는 것만 잘 해낸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케스파의 스타크래프트1 시절 케스파의 비호 아래 초저임금 공장식 시스템으로 운영되던 스타리그/프로리그 브랜드가 공식적으로 종료된지도 벌써 10년이 지났지요. 한 때 세계 최고였던 선수 조차 심리적인 부담을 팀원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대다가 몰락할 수 있는데, 아직 열매가 맺기를 기다리는 무명의 수많은 프로지망생들은 그저 본인도 임요환이나 페이커처럼 되겠다는 일념만으로 하나뿐인 몸뚱아리를 가불로 당겨쓰는 무모한 환경을 당연한 것이라고 물려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해도 천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실패할 수 있는 게 현실인 것이 스포츠의 공통점이지만, 그런 아이에게 이타적인 성향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말은 상상으로도 절대 하고 싶지 않네요.
이미 4차혁명은 시작됐고 우린 그 한복판에 서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가 그 중 하나이며 이스포츠도 당연히 포함돼있는 분야라고 자신있게 단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선택한 길에 확신을 가지고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떳떳하게 물려주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습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옵니다. 50년 전에는 통하던 정신론은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명백하게 말할 수 있는 구시대의 산물인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근데 스포츠에서도 가장 후발주자인 이 판에서는 아직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딴따라의 세상을 꿈꿉니다. 그리고 게임은 세상을 이롭게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제가 믿는 것은 '내가 바꿀 수 있다'는 것 보다는 '나부터 바뀌지 않으면 남들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남들이 바뀌기를 바란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세상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건 엔터테인먼트 답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판을 튕기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히는 주판을 튕기는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이고, 여기서 우리는 게임과 이스포츠의 금전적 가치를 직접 매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대신 최대한 좋게 계산해주도록 입증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한국에서는 자본주의가 망가졌다는 소리 하루이틀 얘기도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그 역할 잘 수행해서 현실과의 괴리를 조금이라도 좁혀봅시다.
*기사에 코칭버그라든지 다른 사안의 대화도 있지만 일단은 여기 적지는 않겠습니다.
“HhdH” 조용민 / Jo Yong-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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