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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겸손과 칭찬의 관계(*조직 문화)

by erdc.kr eRDc 2019. 11. 14.

이 세상에는 겸손이라는 것에 대하여 더 심도 깊은 고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으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은 익히 우리가 쉽게 생각하기로 건방지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차원에 것이 아닙니다. 겸손에 대해서 타인과 비교해 남다른 이해도를 가지고 더 높은 스탠더드를 스스로에게 대어야 하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에도 내가 늘 한분에게만은 틈만 있으면 변하지 마시라고 같은 내용의 당부를 반복해서 드립니다. 그런데 과연 사람(*인간)에게 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그것은 사실 매우 단순합니다. 처음이나 나중에나 한결같이 겸손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겸손하다는 것, 아니 겸손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만약 단순히 모든 부분에서 자신을 그저 낮추는 것이 겸손이라면, 왜 저는 '남다른 이해'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했을까요? 그것은 반대로 이 겸손에 대해서 정확히 고민해 보지 못했던 분들에게는, 무언가 더 알아야 할 내용이 분명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겸손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선행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칭찬입니다. 누군가에게 칭찬의 말을 건네는 것은 두 가지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두 가지 필요 중에 칭찬을 받는 대상이 무언가를 잘한 '그 결과' 자체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칭찬을 하기 위해서 대상의 좋은 결과 값은 필수 요건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뜬금없이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잘한 것이 딱히 없는 대상을 칭찬할 수 있는가를 물으신다면 할 수 있습니다. "잘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계십니다."는 그저 일을 하고만 계신 분들에게도 할 수 있습니다. "넌 훌륭한 아들이야.", "넌 성실한 딸이야."와 같은 말은 받아쓰기 점수가 50점이어도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엄마가 내 엄마여서 고마워!"도 정확히 같은 의미입니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그 두 가지 필요는 과연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하나는 칭찬을 많이 받아본 경험이며, 다른 하나는 칭찬을 많이 해본 경험입니다.

 


"힘드셨을 텐데,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칭찬을 많이 들어본 사람은 칭찬을 들었을 때 다음과 같이 반응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는 단순히 말하면 칭찬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응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칭찬을 많이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아니에요.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라고 반응합니다. 이를 테면 칭찬이 고맙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확한 의미의 겸손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부분에서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것이 겸손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음으로 칭찬을 많이 해본 사람은 수시로 사람을 칭찬합니다. 그러나 칭찬을 많이 해보지 않은 사람은 속으로는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잘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칭찬과 겸손에 대해서 또 다른 오해 하나가 여기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칭찬을 많이 해보지 못한 분들은 실제로는 칭찬을 하고 싶어도 '내가 대체 뭐라고, 저분을 칭찬하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만약 저분을 칭찬했는데 저분이 내가 칭찬할 것으로 오히려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나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칭찬을 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못합니다. 그런데 그것 역시 겸손이 아닙니다.

 

칭찬을 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저 사람을 칭찬하면 다른 사람이 듣고 오해할까 봐 못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분명 칭찬을 할 수 있는 위치이고 칭찬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편애한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그런데 실제로 이것은 '겸손에 대한 오해' 조차도 아니며, 굳이 분류한다고 해도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칭찬을 많이 듣고 칭찬을 많이 해본 사람은 칭찬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칭찬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있다는 것은 칭찬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파급력이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칭찬은 편애와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정확히 분류합니다. 지금부터 매우 중요한 것을 한 가지 말씀해 드립니다. 칭찬과 편애의 근거는 나의 말이 아니라 나의 인격입니다. 사람들이 판단하는 내가 (*이것이) 칭찬이고 편애가 아니라면 그것은 심지어 편애를 하고 싶어서 해도 편애가 되지도 않습니다. 반대로 인격이 갖춰지지 않으면 나는 사심 없이 칭찬을 해도 듣는 이들은 "그분은 누구만 좋아해."라고 말합니다. 

 

결국 보면 겸손이라는 것은 말이나 행동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면 그것은 인격과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는 겸손이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저 겸손한 척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겸손한 것을 좋아하지, 그런 척을 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의 본질을 보기 때문에 실제로는 겸손하고 싶어 하시나, 그 방법을 잘 몰라 결과적으로 겸손한 척이 되어 버린 것이 있다면 그것도 쉽게 알아챕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누군가는 이미 열이 올라 더 이상 겸손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말과 행동만 예전과 같은 형태로 굳어버려서, 계속 자신이 겸손한 줄 착각하는 경우가 발행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흠이 없는 거울 앞에 매일 서지 않으면, 금세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겸손의 행동과 말은 자신의 실제 겸손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완벽함을 채우기 위한 그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게 되어버립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결론을 말씀드리면 우리는 사람(*인간)이라서 그렇습니다. 사람은 분명 여러면에서 지구 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과 비교해 강점이 많지만, 자기 자신이 어떻다는 것을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나약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겸손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 대하여 내가 어떤 100점짜리 답을 하는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게 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일관된 태도를 가지기 위해서는 일관된 인격이 있어야 합니다. 일관된 인격이란 어릴 적부터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 나이 들어서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음과 동시에 또 변합니다. 좋은 인격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은 다름 아닌 칭찬을 많이 듣는 것과 칭찬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겸손이며, 겸손의 거울이 칭찬이라면, 결국 우리는 이 칭찬을 하는 것에 대한 배경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그래야 뜻 모르고 행하는 행동이 아닌 겸손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칭찬이란 사실 아주 쉽습니다. 칭찬이란 내가 저돌적으로 타인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는 "나는 지금 네가 하는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서 들을 거야"입니다. 그래야 '그 사람에게 던질 말의 발견'이라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태도가 일관되게 펼쳐져야 겸손이며 인격입니다. 

 

우리가 만약 40억원을 주고 워랜 버핏과 점심을 먹을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는 실제 경매가입니다.) 우리는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워랜 버핏이 과연 내게 무엇을 말할지를 경청할 것입니다. 이것이 겸손입니까? 맞습니다. 겸손입니다. 우리는 분명 워랜 버핏 앞에서 우리의 말과 행동과 태도 모두 매우 겸손할 것입니다. 워랜 버핏은 분명 우리에게 그가 가진 지식을 말할 것이고 우리는 정말 중요한 지혜를 그로부터 얻을 것입니다. 실제로 기대도 하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반대 상황입니다. 여러분이 초등학교 3학년 아이와 점심을 먹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마도 그 아이에게 들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 아이가 하는 모든 이야기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밥이나 먹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실 것은 저는 그러한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결코 이는 확실히 겸손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의 그릇의 크기를 묻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디까지 겸손하실 수 있으십니까?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우리에게 당장 도움이 되는 사람과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을 거의 즉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거의 태어나는 그 시점부터 이미 그리할 수 있는 우리는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가게 될수록 이 분별이 더 정교해지고 심해집니다. 우리의 시간이 더 값어치 있게 느껴지면 질수록, 값어치 있게 사용하지 못했던 시간이 오히려 반대로 압박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하나의 인격이라는 더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리지 않은 척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를 가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겸손의 반대말은 교만이 아닙니다. 가식입니다. 교만은 가식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을 정의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가식 때문에 우리 주변에서 분별없이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은 만날 지언정 정말 교만하다고 꼭 집어 말할 만한 사람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교만한 사람들은 분명 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면 여러분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혹은 누군가가) 교만한지 교만하지 않은지를 알아보고 싶다면 매우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참가하는 한 모임에서 매번 (*실제 있는 것과 관계 없이) 자기 돈 자랑, 자식 자랑, 지식 자랑, 권력 부심 등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듣는 누군가가(*여러분을 포함한) ① 그 사람을 대 놓고 무시한다던가, ② 그 사람을 유독 싫어한다던가, ③ 뒤에서 비아냥 거린다던가 한다면 거의 100% 지금 마음 상태가 교만한 것입니다. 분명 '크게든 작게든 누가 안 그런 사람이 있는가?'라고 제게 물으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사람(*인간)은 아무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너무 죄송하지만 누군가는 거의 100% 순도에 가깝게 위의 마음들이 생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매우 높은 경지의 스탠더드를 대고 그것을 실현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심지어 그 자랑에 대해서 진심을 담아 사실을 발견하고 오히려 축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는 인격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그 정도로 인격이 훌륭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한 대통령이 있습니다. 장관들이 바쁘다고 빠르게 이동하셔서 더 중요한 사람을 만나서 국정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와중에 자기를 찾아와 자신이 학교에서 겪은 이야기를 하는 한 초등학생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장관들은 학교 급식에 나오는 반찬에 대한 평가를 하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는 대통령을 보면서 가는 시간 때문에 아마 답답해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대통령은 심지어 아이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그것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해하지 마실 것은 여기서 우리가 말하고자 함은 '과연 대통령이 저렇게 분별이 없는 게 맞는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앉아야 하는 사람을 선출한다면, 과연 어떤 인격의 소유자를 선출해야 하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그저 민중의 이야기를 소중히 듣는다는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항상 주어진 시간 속에서 자신의 위치에서 겸손한 태도도 맡은 바를 수행하는 것에 대한 믿음을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가식도 자랑도 능력도 아닌 '신뢰'입니다. 

 

사랑하는 대표님들과 각 조직에서 높은 위치에 계시는 후배님들, 지금 우리 e스포츠는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이 점점 가면 갈수록 실제로 여러분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피곤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늦으막히 하루가 지나면 가지고 있던 모든 활력을 다 소비하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변하지 마셔야 합니다. 타인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셔야 합니다. 특별히 상대적으로 약한 동료들에게 관심을 많이 기울이셔야 합니다. 칭찬을 많이 해주셔야 합니다. 이는 그 칭찬받는 주인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칭찬을 받게 되는 약한 동료를 위해서도 맞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대표님을 계속 겸손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아니 더더욱 근본적으로는 앞으로 우리 산업에서 큰일을 하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조직의 문화를 위해서입니다. 자, 이제부터는 칭찬을 듣게 되시면 마음껏 감사하다고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뒷자리에 애써 앉으려고 하시지 마시고 앉아야 되는 자리에 앉아서 만나야 하는 사람 누구라도, 어떤 말이라도, 열정을 다해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껏 칭찬하세요. 그렇게 진정한 의미의 겸손을 추구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by erdc.kr

구마태

 

ps, 지스타를 내겨가는 기차 안에서 쓴 위에 글을 이렇게 안 자고 퇴고 중입니다. 이처럼 저도 계속 노력하려면 칭찬이 필요합니다. 많이 해주시고 글 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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