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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보이지 않을 때

by erdc.kr eRDc 2019. 10. 29.

이 글은 수필입니다. 가끔 말씀드리지만 저희 할아버지는 등단한 시인이며, 또 저희 어머니는 마찬가지로 수필가이십니다. 그래서 저도 아마 아주 못쓰지는 않을 거라 믿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근거는 별로 없는 자신감입니다. 사실 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에도 심하게 날 것을 던지는 너의 글에 지친다는 선배님도 계셨습니다. 제가 봐도 감탄할 만큼 군더더기가 하나 없는 퇴고를 보여주시는 저희 회사 이사님도 계십니다. 글이라는 것은 그래서 더더욱 언제나 저를 겸손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이 사이트의 성격을 다들 아시기에 당연히 수필로 영역을 확장하려는 계획이 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을 실거라 믿습니다. 다만 이 시대에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어떠한 형태이든 단순히 사용하려는 것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늘 말씀드리지만 저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일 뿐이지, 제 자신은 아무것도 확인할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아마도 많은 후배님들이 'e스포츠가 성장하고 있다는 지표를 확인하고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지만, 왜 내게는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한국에는 그러한 이유로 제대로 된 e스포츠 전문가가 없다고 비관적으로 이야기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또 정말 현재 상황이 어렵다는 사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저는 그러한 글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말씀드리면 이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시대' 혹은 '가난은 나라님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말과 같은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이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 산업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고 누구도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생각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물론 이처럼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상실감과 좌절감 그 자체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이 세상에는 하나의 완전무결한 이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치란 '세상 이치가 다 그렇다.'라고 할 때 사용하는 그 이치입니다. 제가 아는 한 분은 이 이치 때문에 세상에는 우연은 없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 주변에는 많은 분들이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이치란 결국 두 가지를 함축하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관점에서 '진실로 매우 정교하게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세상을 알려는 지식은 구하는 누구나에게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저는 보통 이 주제에 대해서 말할 때 이치라는 표현보다 더 나은 다른 표현을 더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표현을 이 수필에서는 사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 이유는 제가 그 의도를 섞지 않아도 '이치'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후배님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렇게 매우 분명합니다. 


저는 이미 오랜 기간 게임을 좋아했고 이 산업에 관심을 많이 가져온 친구들이 이제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이 되었다고 한다면 전혀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굳이 더 얻어야 하는 경험이 많이 남아 있다고도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누구를 예로 들기 어려워 잠시 제 이야기를 하면 저는 당연히 게임을 많이 좋아했습니다. 이미 제 여러 글에서 그러함이 많이 확인됩니다. 저는 26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게임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엄밀히 말해 진짜 e스포츠 산업으로는 나중에 건너온 케이스입니다. 그렇게 올해 40살입니다. 아이도 둘이 있습니다. 큰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스스로 결정해서 들어갔다가 스스로 판단해서 이직한 이력은 오직 협회에 있었던 횟수로의 5년 시절뿐입니다. 그러나 그렇더라 한들 제 지식은 이 사이트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어찌 제가 젊은 후배님들을 어리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저 역시 그렇다면 우리 역시 그러한 것입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제 이야기를 하면 저는 앞서 말한 협회 외로는 전부 해고당하거나 몸담았던 조직에서 정리당한 경험들 뿐입니다. 그때마다 이글의 제목처럼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래도 늘 제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짐했습니다. 제가 여러 글에서 늘 말하는 것처럼 조직은 살아 있는 생물 같아서 몸에 맞지 않으면 뱉는 것뿐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는 절대로 내가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며 언제든 다른 곳에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스스로를 이해시켰습니다. 그런데 더욱 힘들었던 것은 저 스스로에게뿐 아니라 우리 와이프에게도 이런 설명을 해야만 했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성공과 실패는 그 사람의 삶에 그때마다 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해고로 인한 상실감도 이미 내 안에 너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여하튼 타인에게 이 설명까지 하려니 견디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어찌어찌 그녀에게 설득을 했더라도 조직이 나를 필요에서 배재했다는 사실 자체는 하나도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우리 부인님은 "그래 알았어요."라고 내게 대답을 했더라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저를 불신임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이 결론에 근거한 그 근본적 씁쓸함 자체는 없앨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든 이 결과는 제게도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아내를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존재에 있어 그 누구보다도 인정받고자 하는 대상이 바로 아내 아니겠습니까? 늘 우스개 소리로 드리는 말이지만 소크라테스도 못했던 그 불가능해 보이는 그 일을 말입니다. 그러함에고 불구하고 저는 사실 생각하기도 또 드러내기도 원하지 않는 이 이야기를 내보냅니다. 우리 후배님들에게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전달만 된다면 이 부끄러움이야 얼마나 대수이겠습니까? 더욱이 이러한 일들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제 인생에서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달려갈 때가 있고 멈출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멈추어 서 있는 시기를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불확실한 미래의 환경이 저처럼 가정이 있는 사람을 짓누를 때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런데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올바르고 하루를 살아온 내 마음에 거리낌이 없다면 <서 있는 시기>는 세상이 지금 여러분에게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저는 지금 세상 이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이 글을 분명 다시 보게 될 이제 겨우 40이 된 어린 어른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사실 부끄럽지만 분명한 것은 절대로 그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늘 듣는 말씀 이시겠지만 봄이 가면 여름이 옵니다. 한 여름에는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는 싸늘한 계절인 겨울도 때가 되면 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오늘은 이 세상 이치 3가지를 이 글을 읽으실 사랑하는 또 결코 어리지 않은 여러분들에게 받은 지혜에 따라 담담히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사람 바라보지 말라>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제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제게 한 가지 늘 하시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겨우 자기 앞 가름하기에 바쁘다'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환경을 이기는 사람이 주변에 많이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저는 지금 사람의 능력이 사람에게서 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능력이 절대로 무한하지 않고 제한적이라는 것을 전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해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처치에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늘 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서울로 올라올 때, 같은 직업을 가진 잘 사는 사촌 형이 서울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분명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때도 그전에도 지금도 정말 좋은 분이시고 주변에 신뢰가 있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일명 'IMF 시절'이 왔습니다. 그렇게 잘 나가는 사촌 형이라도 돕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었습니다. 환경 앞에 사람이라는 것은 겨우 이런 것입니다.


절대로 오해하지 마실 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가?'를 질문할 때 그것에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저는 월드비전과 같은 곳에 기부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잘하십니다. 저도 여러 곳에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알자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아마도 지금보다 더 기부를 획기적으로 늘린다 한 들 전 세계의 기아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는 달리 생각해 보면 누군가의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대부분의 일들은 사실은 이 세상 이치에 맞는 일이 원래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알아낸, 또 누구에게나 열린 세상 이치를 아는 지혜의 산물이, 남들 보기에도 가치가 있어서 결국 사업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결국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스스로를 억지로 속이는 것 밖에는 안됩니다. 진실로 사랑에 근거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환경을 바라보지 말라>입니다. 우리는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고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사람은 바람을 조정할 수 없는 것과 존재한다는 것, 이 두 가지를 분명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바람이 불어오면 바람을 막는 코트를 입습니다. 바람이 멈추면 코트를 벗습니다. 이는 사람이 환경을 바꾼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환경을 이긴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E스포츠는 사실 이렇게까지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누구나 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제 글을 많은 팀 관계자들이 보십니다. 그중에서는 팀 감독도 있고 감독 겸 설립자겸 오너도 있고 그러합니다. 우리는 우리 팀을 프로 팀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것은 명백히 사실입니다. 다만 우리는 관심도 없지만 돈도 없어서 프로 농구팀을 만들지는 못하고, 프로 야구팀을 만들지는 못하고, 프로 축구팀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또한 존재하는 사실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다른 스포츠에 비해서 사실 거의 돈이 없어도 프로 팀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라고 인정하신다면, 그 프로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 역시 지금 이 형태 밖에는 안 되는 것도 인정하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억울하실 수 있지만) 사실은 세상이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도 솔직해져야 합니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결코 '우리 팀을', '우리 회사를', '나를' 지금처럼 만들라고 한 적도 없고, 또 더욱이 먹여 살여야 하는 책임은 없습니다. 오래 하지 마실 것은 이는 절대로 환경에 대해서 순응하고, 누구에게도 아무런 비판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또한 환경을 이기기 위해서 코트를 살 필요도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환경이라는 것이 그렇게 바람과 같이 내게 존재하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 '인정'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결코 '포기'가 아닙니다. 여기가 우리의 시작점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달리기를 시작해야 하는 그 시작점은 먼 곳 어딘가 이상적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라는 것을 바로 알자라는 그 말입니다.  


역으로 환경을 바꿀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척박한 사막도 노력에 따라 울창한 밀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결코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반드시 힘들어도 해야 하는 고생 즉, '행동'입니다. 누구도 하루아침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루아침에 노예 해방이 있을 수 없고, 하루아침에  스마트폰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너무 죄송한 말씀을 드리면) 이 산업의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다른 유리한 형편과 환경에 처해 있는 가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억지로 피라미드를 지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조직이든 사람이든 명백하게 비판을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즉각 변화시킬 수 없는 이 환경에 영향을 받아 비관론에 빠지면 안 됩니다. 차라리 그럴 거면 처음부터 발 닮그지 마셨거나 지금이라도 발을 빼셔야 옳습니다.  


셋째는 <신념이 있다면 타협하지 말라>입니다. 제가  젊은 CEO님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꼭 능력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사실 굳이 따지면 부족한 면들이 더 많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분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표님은 바탕이 좋습니다. 그리고 스토리가 명확합니다. 게임이  좋아서 게임하는 사람들 만나고, 그중에 프로가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 프로로 가는 길을 열어 주고 싶어서, 이렇게 활동해오신 거 정말 존경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e스포츠 어떻게 돈 좀 된다는 소문에 이끌여 자기가 가진 무언가와 접목시켜 보려고 아주 쉽게 접근하는 이때에 어찌 대표님을 제가 귀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대표님들, 또 후배님들, 초심을 기억하고 항상 마음을 굳게 먹어 정도를 걸으셔야 합니다. 물론 이는 성공과 실패에 있어 아무런 보장이 아닙니다. 저 역시 늘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셨으면 하지만 실상은 그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미래의 누군가들은 여러분을 기억조차도 못하고, 아무런 감사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노력이 아무런 대가 없이 더 어린 후배님들에게 그저 기회 되어 가버릴지도 모릅니다.


먹고사는 일은 분명 힘든 일입니다. 저도 이런 걱정이 불현듯 머릿속에 스쳐 지나갈 때면 매번 '이 사이트의 200개의 글 중 2/3 정도는 (*글을 보아 오셨다면 충분히 예상하실 수 있는 이유 때문에) 지워버릴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 어딘가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닌 나와 내 주변에서 나를 정확히 인지하고 평가할 수 있는 곳에 지금처럼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내 곧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 어떤 변화도 변혁도 신념과 그에 맞는 행동 없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도 우리 중에 누군가가 아이폰과 같은 혁신을 세상에 내놓는 잡스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나라에 잡스와 같은 사람으로 출현할 수 있도록 나는 그 배경이 되는 것은 어떤가라는 생각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e스포츠 업계의 상징적 의미의 잡스가 나온다면 그것이 누구라도 저는 그것으로 된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의 성공 여부와 관계 없이,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는 것과 관련 없이, 여러분보다 더 어린 친구들은 여러분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우리는 늘 다음 세대에게서 평가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신념에 의해 정도를 걸었다면 과거의 성공과 실패와 상관없이 여러분도 분명한 기여를 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언제든 또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는 시장과 산업과 사회가 건전해진다는 의미입니다. 저도 나이 40이지만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며, 늘 도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시대적 정신이 있어야 우리나라의 이 산업이  때가 되면 변혁이 일어날 수 있게 됩니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나라는 진정한 e스포츠 종주국이라고 천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고귀한 지혜를 구하며, 환경 앞에 사람임을 인정하고, 신념에 강인함이 있다는 것은 결코 비판적 사고를 가지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더 비판적 사고를 가지시라는 의미입니다. 정도가 아닌 것은 피해를 감수해서라도 반드시 집어야 하고 절대로 대물림해서는 안됩니다. 저도 여러분들에게 평가를 받습니다. SNS를 비롯하여 많은 커뮤니티에서 기성세대인 제가 도저히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일명 팩폭을 하시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확실히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들도 때가 되면 그 자리에 서게 됩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듯 그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러하기에 여려 분은 더욱더 어려 분 자신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행해도 결국에는 모두에게 인정을 받고, 어떤 말을 해도 절대로 냉소도 비관도 될 수 없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후배님들, 지금 두려우십니까? 그런데 이렇게 종합해 우리가 정말로 두려운 이유를 가만히 살펴보면 그것은 절대로 지금 가는 길이 실패할 것 같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약해져 신념을 꺾고 타협을 해도 성공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패가 진정 두려운 이유는 결코 앞이 보이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신념에 따라 이 시대에 후배님께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도저히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저처럼 해고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회사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 사회가 이상적이지 않고 아무것도 나에게 달려 있지 않았던 것 때문에 내가 억울할 정도로 심한 고통을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실패의 낙인도 찍히고 심지어  타인에게 그것을 설득하는 것도 내 몫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반대로도 묻습니다. 그토록 가슴 뜨겁게 가지고 있었던 그 열정에 기반은 그 신념은, 그대로 되지 않았을 때 어차피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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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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