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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게임 중독과 게임 문화 사이

by erdc.kr eRDc 2019. 5. 24.

어느 날인가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형님도 '게임은 질병이 아니라 문화'라는 캐치프레이즈로 SNS의 프로필 사진을 변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났을까요? 한 매체에서 '그동안 게임을 질병으로 등록하려는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가 (*연구한 것) 준비해 온 것은 무엇인가?'라는 논지의 글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것을 다 떠나서 게임이 중독이 아니라 문화라는 논지의 글은 우리는 그동안 이런 일(*WHO의 디스오더 코드 등록)이 있을 때마다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글들은 전부 도박이나 마약과는 게임이 다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중독에서 보이는 기본적인 현상들을 몇 가지 나열하면서 게임은 그 부분에 대해서 증명할 수 없다는 논지의 글도 확인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설정하고 있는 이 방향(*설득 논리)에 대해서 그 안타까움 때문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시름에 빠졌습니다. 그 참담의 가장 근본적 이유는 '이 모든 것이 진실로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가?'라는 질문에 있어, 그 답이 아니라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아마도 (*업계 사람의 입으로는) 단 한 번도 들으신 적이 없는 내용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새로운 내용이 아닌 함구의 영역이라 저는 시름이라 표현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조심스럽게 말씀드려야 하는 것은 항상 우리가 우리를 얼마나 잘 설명하는가에 따라서 세상은 공감하고 진실로 사회가 더 건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 자체가 '돈의 논리'이냐, 아니면 '마녀 사냥식의 이성이 아닌 감정의 영역'이냐와 같은 것이 아닌, 오늘의 우리 자신을 가장 깨끗한 거울에 투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를 테면 '정직한 태도'입니다. 더 직접적으로 말씀드리면 정말 있는 현상은, 정말 있다고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예를 들어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① 여러분들 주위에 잘못된 부모의 교육을 통해서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② 있다면 그것은 그런 수준의 부모 개인의 탓, 또는 그 부모를 만난 운 없는 아이의 탓으로 돌려야 하는 것인가요? 결론적으로 저는 (*조심스럽게)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 맞는지를 우리가 우리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해하지 마셔야 하는 것은, 이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게임은 중독이고, 중독이니 질병이고, 질병이니 의사가 치료해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 아닙니다. 


몇몇 기관과 단체는 게임 중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게임 과몰입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게임에서) 이 중독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이 그만큼 지대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명확히 알아야 하는 사실은 그것이 중독이라는 단어이든 과몰입이라는 단어이든 우리가 단어를 가져다 쓰는 것으로는 그 '사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아무런 근본적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어떤 아이가 게임에 과몰입하고 있다고 표현한다고 해서, 그 아이의 삶에 있어 게임이 비정상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경감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 업계의 자기 위안일 뿐입니다. 내가 중독이라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과몰입이라고 정의해), 그저 더 몰입하고 있는 것이라고 치부하여, 이것이 최소한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이해시키려고 시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것에 대해 싫어한다고 하기 싫어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그 사람이 그것을 대하는 근본적 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더욱이 이 과몰입이라는 표현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중독의 부정적인 면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수준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쇼핑 과몰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영화도 음악도, 미술도, 스포츠도 과몰입은 없습니다. 심지어 스마트폰도 SNS도 과몰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게임은 과몰입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게임 중독(*그것을 과몰입이라고 부르던)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이슈이고, 이 이슈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을 하는 것이 옳은지, 찬반 측이 첨예하게 대립한다입니다. 저는 제가 여기 있기 때문에 냉정하게 말씀드립니다. 그것이 어떠한 이름이든 이 문제는 분명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0분 토론의 그 여성 패널분이 논리가 대도서관에 비해서 부족하다고 하더라고 (*심지어 이겼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에 의한 사회적 이슈는 단 일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누군가는 게임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그것이 중독이라고 판단하며, 사회적으로 공감합니다. 즉, 이 사실에는 각 입장이 이대로 서로 간에 평행 선상만 그린다면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걱정이 돼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저는 게임을 많이 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프로게이머는 일반인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게임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에게 일반인이 보여주는 그 어떤 것과도 반하는 행동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상대는 늘 이것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은 누가 봐도 게임을 많이 하는 프로게이머가 남들보다 폭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증명을, 사회적으로 이끌어 내면 됩니다. 프로게이머 임요환과 같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선수에게 '게임에서 지면 분노에 휩싸여 상대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드나요?'라고 물어본 다음에 '그렇다'라고 대답을 들으면 되는 것입니다. PC방의 전원을 내려보기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전원이 내려간 PC방에서 소리치는 어른들을 보면서, (*게임 문화를 모르는) 부모님들은 게임을 한참 즐기고 있는 아이들의 손에서 핸드폰을 강제로 빼았았던 그때의 경험을 떠올립니다. 또는 시작한 지 10분밖에 지나지 않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탈주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어머니께서 아이에게 밥 먹으러 나오라고 10번도 넘게 소리쳤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반면 우리 사회는 (*불행하게도) 한 달이 넘게 자기 방을 나오지 않고, 밥도 방문으로 밀어 넣어줘야 먹고, 오직 게임에만 몰두하는 친구들도 존재합니다. 정직하게 묻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이 세상에 없습니까? 아니면 솔직히 그런 부분은 안 보고 싶으십니까? 젊은 부부가 게임에만 몰두하면서 우는 갓난아이에게 폭행을 하거나, 혹은 심지어 우리가 말하기 조차도 어려운 일들을 행합니다. 그런 사회 현상들은 정녕 없나요? 그런데 우리는 이 와중에도 반대로 상대에게 늘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논지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그 사람은 게임이 없어도 다른 것에 빠진다. 저도 그렇게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이쪽 끝에 게임이 있고 다른 쪽 끝에 공부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게임 쪽은 아이가 하고 싶은 즉, 재미가 있는 것들입니다. 공부 쪽은 아이가 하기 싫은 즉, 재미가 없는 것들입니다. 자, 그럼 게임을 제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는 그러면 어디로 가죠? 네 그렇습니다. TV 앞으로 갑니다. 이유는 무엇이죠? 만화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TV를 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죠? 만화책을 폅니다. 적어도 장난감을 가지러 갑니다. 그렇습니다. 공부까지 가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모든 재미있는 것들을 다 없애야 합니다." 이 논지는 적어도 게임 자체(*존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제게 묻습니다. '그래서 게임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니?'   


게임은 도구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게임이 도구라는 의미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저 게임을 많이 하는 것과 그것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이에 대한 우리의 논지를 들어 보면 '게임은 문화다', '그래서 많이 해도 이건 중독이 아니다', '그래서 병이 아니다.', '그래서 문제가 없다'라는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추가로 그 아이가 게임 중독에 빠진 이유는 게임 자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와 그 아이가 처한 환경 자체에 중독에 빠지게 된 원인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부모/친구를 포함한 원만하지 않은 대인관계, 경쟁사회 또는 성적에 대한 압박 등으로 인한 결과이기에, 여기에 게임은 마치 오히려 희생양처럼 보입니다. 분명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게임을 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 (*혹은 해서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 게임을 함으로써, 게임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적 인상이 나빠진 것이라고 들립니다. 추가로 어머니들의 표를 노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 어머니들로부터 존재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정부 부처, 질병으로 분류됨으로 인해서 이익 실현이 확장될 수 있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합작하고 있다고 음모론을 펼칩니다. 


반대의 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임 자체가 중독성이 있다. 계속 게임을 해야 되게끔 구조화되어 있다. 게임 회사는 근본적으로 그것을 고민하는 곳이고, (*사회가 병들어도 이익만을 많이 남기기로 작정 한, 사람들의 모임인 그 회사는) 자기 게임을 더 많이 하게끔 하는 행동들과 모든 방편을 멈추지 않고 멈추지도 않을 것이다'입니다. 게임 내에서 통용되는 가치인 아이템(*또는 실력, 이김)을 더 가지고 싶게끔 할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 그 아이템을 못 가진 사람들을 더 구조적으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시간이든 돈이든) 매우 조직적이고 계산적으로 사고의 깊이가 약한 사용자를 무작정 노력하게 만들어서, 도저히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할 것인데, 이것이 어떻게 중독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우리)은 이렇게 주장한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 가지고 싶은 아이템을 다 가지는 사람들이 어디 있는가?', '더 가지고 싶게 만드는 것에 무슨 죄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부가가치 상품인 명품에도 죄가 있다고 보는가?'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게임에 심각하게 빠져 있다면 그것은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는) 카푸어 같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건 산업이니까, 우리는 사회에 경제적으로 공헌하니까, 우리는 그냥 계속 만들 거고 만들 거야, (*사회적 책임을 포함해서) 제발 아무런 다른 말도 내게 하지 마!!"라는 말만 몇 년째 반복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외람되지만 이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또한 누구의 논리가 맞다 그르다도 아닙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 게임이란 도구는 그 도구를 사용하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아니 우리 사회에게 묻습니다. 누가 이 도구의 마스터입니까? 누가 이 도구를 건전하고 아름답게 사용하는 법을 가장 잘 알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누가 그것을 이 사회에게 알려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 책임의 주체가 과연 그 아이의 엄마입니까? 정신과 의사입니까? 여성가족부입니까? 도대체 누구입니까? 누가 그 '무작정'이라는 늪에서 그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저는 지금 이 시간 다름 아닌 우리라고 눈물로써 호소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짊어져야 하는 이 짊을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외면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제가 깊은 시름에 빠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진심을 담아 간곡히 이 글을 보시는 업계 담당자님들께 말씀드리면) 우리가 마주하는 이 문제는 '게임이 문화이냐 중독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서의 우리 어른(*특별히 이 업계)의 역할을 우리가 우리 사회를 위해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와인 따개를 사용해본 적이 없는 한 사람이 따개 앞 뾰족한 부분으로 막혀 있는 코르크를 조금씩 긁어내고 있었습니다. 괴로운 표정으로 한참을 그리하고 있는 데 누군가가 옆에 다가왔습니다. 그러자 다소 기다렸다는 듯이 신경질적인 어투로 "도대체 왜 이 쓰레기를 사람들은 와인 따개라고 부르는 거지?" 그때 다가온 그 누군가는 뾰족한 부분을 돌려서 코르크에 끼우로 손잡이를 양 옆으로 제쳐 와인 코르크를 한 번에 꺼내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와인 따개를 사용해본 적이 없는 그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아 이래서 이게 와인 따개구나.' 연장선상에 있는 좀 다른 이야기를 드리면 여러분은 '술'을 문제(*중독)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문화라고 생각하시나요? '알코올 중독', '음주 문화' 여러분들 마음에는 어떤 것이 더 익숙한 단어이신가요? 제가 아는 존경하는 한 분은 우리 업계 사람들과 곧 잘 어울려서 자주 술을 드십니다. 더 친근하게 또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함이십니다. 지금 하고 계시는 일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런데 여하튼 요즘 자주 술을 과몰입하여 드시고 계시니, 우리는 그분을 알코올 중독자라고 불러야 할까요? 누구도 절대로 그리할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이 과거에 어디서 누구에게 처음 술을 배웠는지를 한번 떠올려 보시기를 요청드립니다. 그때 여러분은 혹시 술을 '알코올 중독'으로 배우셨나요? 아니면 '음주 문화'로 배우셨나요? 무엇을 위해서 배우셨나요? 술은 아마도 그저 이렇게 도구일 뿐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술 자체가 무조건적으로 해악이라 존재 자체만으로 이 세상 모두를 알코올 중독자로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선행하여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술을 즉, '음주 문화'를 우리 사회가 우리 사회 구성원에게 바람직하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다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 누구도 완벽한 인간은 없다는 것을 인지한 우리가 우리 구성원들을 위해서 (*선천적인 것과, 또 스스로에 처한 상황과 현실에 의해),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일부가 있다는 것은 인정/인지하고 그들을 구할 방법을 사회적으로 강구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10살 지성이와 7살 지아는 제게서 찬찬히 게임 문화를 배울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엄마와 같이 게임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도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배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기서는 단순한 아빠가 아닙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분야의 전문가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로 묶여 있습니다. 즉, 한 개인인 아빠는 모든 분야의 모든 전문성을 모두 갖출 수는 없지만 사회는 가능합니다. 


정리를 하면 그래서 저는 어떤 특정 현상에 대해서는 주저함 없이 (*게임 과몰입이 아닌) 게임 중독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이 게임 중독에 빠져있는 사람이 (*그것의 원인이 어떠한 것이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가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는 한) 사회가 우리가 주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또 게임을 문화라고도 부릅니다. 그것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 게임을 잘 사용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어울려 살면서 향유하는, '바로 이것을!!' 게임 문화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늘 우리가 사회에게 게임을 문화라고 주장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게임을 문화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게임 리터러시란, 게임을 건전하게 또 바람직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사회 구성원들에게 알려 우리가 우리 스스로 게임의 문화적 역할을 늘려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게임 리터러시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소통입니다. 이 소통이란 문화라는 이름을 붙이는 모든 것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이 소통(*커뮤니케이션)이 모여 있는 것을 사회(*커뮤니티)라고 합니다. 소통에는 사회 구성원 간 전통과 향유, 그리고 예의를 바탕으로 하는 진솔한 감정의 교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그 소통을 건전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E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근무할 시절 가끔 이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지성아 밥 먹어!"라는 말에 "엄마 나 롤 중이야!"라고 대답하는 아이의 사정과 환경을 이해하는 엄마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를 이해하는 아들을 말입니다. "엄마! 혹시 요즘에 내가 하는 게임에 대해서 말해 줄까?", "엄마, 나는 요즘 이 게임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 엄마와 대화하고 싶어, 나는 엄마가 모든 면에서 늘 나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것을 알아!,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 왜냐하면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나의 엄마니까."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은 변합니다. 더 이상 아이 때와 같이 순종적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스스로 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아직은 여전히 어른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확인받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친구로부터 확인받고 싶어 질 무렵, 우리 아이들은 가족이라는 작은 단위 사회에서 더 큰 단위로 사회로 나아가는 법도 같이 체득하게 됩니다. 그곳에는 경쟁도 있습니다. 밝은 면도 있지만 어두운 면도 있고 희생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희망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함께 나누는 기쁨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의 많은 아이들은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더 잘 적응합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올바른 부모에게서 찾을 수도 있고, 단순히 그 아이가 처한 운이 좋은 환경에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쯤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반대의 아이들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①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② 자신의 환경도 선택할 수 없는 이 아이들에게도 우리가 하나의 사회로서 존재하는 이유를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저의 제안은 매우 시스템적이고 실질적이며 검증이 이미 완료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운과 같은 확률에 기대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플루언서'입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쉬운 말로 하면 게임 코치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님이 하는 말씀을 잔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비단 성적이 잘 나오고 학교 생활에 있어 아무런 무리가 없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자신이 관심이 있는 장르의 코치의 말에는 절대적으로 귀를 기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이들의 '인플루언서' 즉, 아이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축구 선수를 희망하는 친구에게 손흥민 선수가 우연히 만나 한마디 어드바이스를 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아이는 그 말을 영원히 품고 살 것입니다. 이것은 축구만의 이야기입니까? 가수를 희망하는 친구들에게 가수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천문학자는, 우리가 이러한 예를 이보다 더 들어야 할까요? 


그래서 우리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코치들을 많이 배출해야 합니다. 그 게임 코치는 아이들에게 단순히 게임을 더 잘하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정당당한 승부, 팀 워크, 절제된 훈련, 선후배 간의 예의, 심지어 우리를 아끼는 부모님께 순종하는 법도 가르칠 것입니다. 아이들은 듣습니다. 내가 이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또 무엇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그 사람을 인플루언서로 정하고 신뢰하며 따릅니다. 목표를 정해 두고 정진하는 모습을 보는 부모님은 어떤 마음으로 그 아이를 바라볼까요? 다른 집 아이들을 예로 들 수 없어 우리 집 아이를 예를 들면, 구청장 배 중학교 대항전에 출전하는 신방학 중학교 E스포츠 팀에 구지성이가 들어갔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코치 밑에서 체계적으로 훈련받으며 미래에 그 아이가 맞닥드릴 사회를 모의 체험합니다. 물론 훈련이 힘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게임이지만 연습하기 싫어서 그만두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또 아이들과 서로 의견 충돌이 있어 싸울 수도 있습니다.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자신의 생각을 꺾고 조직에 순응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목표를 향해 진지한 태도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결과를 받은 후 자신의 삶의 과정을 돌아보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 세상 누가 게임을 중독이라 말하겠습니까? 정녕 그 아이의 엄마인 우리 와이프일지언정 그럴까요? 



By erd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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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참고자 제가 예전에 작성한 게임 리터러시 관련 글을 링크 드립니다. 

게임 리터러시의 개념과 교육

(NEO) 게이미피케이션과 게임 리터러시

자녀와 함께하는 핑거톡 콘서트를 참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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